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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 〔1 확장편〕
- 예술은 우리에게 열려 있다
임상빈 지음, 2019, 마로니에북스
이 글은 대학원시절 읽었던 책으로 예술적 통찰을 대중들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그림을 수록하였고 독자와 대화하듯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놓았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바를 보다 깊이 알고싶다면 직접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요약하여 보았다.
I 예술적 지양-순수미술이 꺼리는 게 뭘까?
1. 설명을 넘어:art는 보충이 아니다.
‘모더니즘’운동이 시작되면서 설명하는 미술은 구시대적이 되었다.
2. 장식을 넘어:art는 서비스가 아니다.
순수미술은 단지 아름답다 보다는 새롭다는 평가를 선호한다.
3. 패션을 넘어:art는 멋이 아니다.
-패션은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현대미술은 보다 깊은 인문학적인 토양에서 그 존재 이유를 찾는다.
II 예술적 지향-순수미술이 추구하는 게 뭘까?
1. 낯섦을 향해:art는 이상하다.
- 예술은 일상을 새롭고 낯설게 보여주는 것,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중요하다.
2. 아이러니를 향해:art는 반전이다.
아이러니는 일방적인 단순한 사실이 아닌 복잡하고 미묘한 진실을 보여주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구조적 아이러니는 작가의 의도에 의한 것이지만 관객의 해석에 따라 결과적 아이러니가 될 수 있다. 사실적인 내용과 조형적 형식의 아이러니를 통해 인생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3. 불안감을 향해:art는 욕이다.
미술은 적극적이든 수동적이든 추함, 인간의 민낯, 난장, 불안함 등을 표현하여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4. 불편함을 향해:art는 사건이다.
미술사에서 인정받은 예술은 당대에 유의미한 사건을 만들어 예술 담론의 불을 지핀 작품이다. 즉 불편함은 진정한 편함과 쾌감을 인식하기 위해 활용될 수 있다.
III 예술적 자아-나의 마음과 사상은 어떻게 움직일까?
1. 자아의 형성:art는 나다.
작가가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의식적인 자기애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은 자화상 이외에도 다양한 측면으로 표현된다. 예술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아를 내포하게 된다
2. 아이디어의 형성:art는 토론이다.
토론을 통해 작품은 다양한 의미들로 연결되고 확장된다. 비록 작가의 의도와는 종종 왜곡되고 와전될지라도 관객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을 하게 하여 사고가 유연해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 낸다.
3. 숭고성의 형성:art는 신성하다.
예술은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숭고미를 추구한다. 광활한 대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을 표현한 프리드리히의 작품이나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황홀경>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인간만이 감지할 수 있는 느낌을 표현하였다. 또한 표현대상이 정신적이든 세속적이든 사실적이든 기술적이든 간에 인간을 초월하는 어떠한 신비로운 경지에 대한 감탄을 예술은 추구한다.
4. 세속성의 형성:art는 속되다.
서양고전주의 시대는 풍속화가 저급 미술로 취급을 받았으나 속세를 그린다는 것은 우리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진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속된것과 성스러움은 마치 존재와 관념처럼 이분법으로 나뉠 수 없는 개념이다.
5. 개인의 형성:art는 개성이다.
-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오면서 인본주의로 인해 신이나 왕을 위한 미술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취향이 중시되었다. 자본주의로 인해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은 자기 취향의 작품을 구매하거나 후원하기도 하였고, 작가들은 지적 독립체로서 가치를 높여가며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예술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하며 그 자체로써 황홀경을 주는 것이다.
IV 예술적 시선-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1. 자연의 관점: art는 감각기관이다.
미술의 눈(시선 9단계 피라미드)은 자연의 눈, 관념의 눈, 신성의 눈, 후원자의 눈, 작가의 눈, 우리의 눈, 기계의 눈, 예술의 눈, 우주의 눈 등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그 중 자연의 눈은 ‘순수’와 ‘발설’로 나눌 수 있는데 ‘순수’는 때가 타지 않은 눈으로 내 앞을 대면하려는 태도이고 ‘발설’은 하고싶은 대로 하려는 태도이다. 예술은 하나의 사안을 다양한 시선으로 풍부하게 음미하는 예술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2. 관념의 관점: art는 지각이다.
관념(지각)의 눈은 자신의 이해 방식대로 세상을 보려는 태도다. 즉 세상을 눈으로가 아닌 뇌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추상’과 ‘이성’으로 구분되는데 ‘추상’은 내세를 보려는 이집트 미술에서 잘 나타난다. 파라오와 절대자의 존엄, 내세에서 파라오가 신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동원된다. ‘이성’은 수학, 비율, 기하학의 발전하게 하고 미술에서도 황금비율의 적용, 건축, 도시공학에 이르기까지 오늘날까지 많은 발전을 증폭시킨다.
3. 신성의 관점:art는 고귀하다.
신성의 눈은 나의 관점과는 다른 신성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려는 태도다. 우선 종교화를 보면 신이 주체가 되고 그림을 보는 나는 객체가 되는 ‘역원근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화는 세상에 대한 신비롭고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매체로 전파하고 있다. 또한 예술작품은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에 대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4. 후원자의 관점:art는 자본이다.
후원자의 눈은 미술에 취미가 있는 자나 투자자가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 즉 선호하는 것을 작품으로 가시화시키려는 태도인데 당시의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상업적인 목적이 많이 개입된다. 한편 사진이 없었던 시절에 초상화나 가족화등 후원자의 직접적인 참여로 작품이 제작되었다.
5. 작가의 관점:art는 자아다.
작가의 눈은 세상 속에서 나의 자아를 발현하려는 태도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의 사상으로 인해 작가는 자신을 작품 속에 끼워넣기도 하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작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세상에 드러낸다.
6. 우리의 관점:art는 감이 있다.
우리의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나아가 나만의 시선을 책임 있게 결정하려는 태도다. 즉 예술작품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고 여러 가지 견해가 생길 수 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의 결론이 아니라 감(느낌이나 생각)이나 가치유보이다.
7. 기계의 관점:art는 감이 없다.
기계의 관점이란 사람이 대상을 바라볼 때 무조건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이입을 지양하고, 개념과 작동원리 등을 객관적으로 가감 없이 바라보려는 태도이다. 예술은 작가의 통제 즉 의도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예술이 탄생할 수도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관객의 감정이입이 배제될 수가 없다. 결국 예술은 감정이입과 감정차단 사이에서 긴장한다. 나아가 작가는 조형적 결과물 보다는 개념적인 과정 자체를 중요시하면서 작품의 조형적 결과물로서의 예술품과 개념적 과정으로서의 예술행위 사이에서 긴장한다. 미니멀리즘은 기계적인 생산 공정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작품의 개념에 집중하였다.
8. 예술의 관점:art는 마음이 있다.
예술의 눈은 ‘아이러니’와 ‘통찰’로 구분된다. 아이러니를 보려는 태도는 두 개의 대립항 즉 행복과 슬픔, 달콤함과 처연함 같은 양가감정 등이나 사람과 기계와 같이 유감과 무감의 폭을 한데 어우를 때 형성된다. 통찰은 예술로 인해서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격하게 통하는 순간을 맛보게 한다.
9. 우주의 관점:art는 마음이 없다.
우주의 눈은 무심을 말한다. 사람이 이해 가능한 폭을 넘어선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연상을 통해 우주를 인식적으로 보려고 한다. 예술은 우주와 같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 하는 것, 불가해함 자체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V 예술적 가치-예술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가치는 뭘까?
1. 생명력의 자극:art는 샘솟는다.
예술은 생생한 에너지, 무언가에 이끌리는 충동의 에너지, 어딘가를 지향하려는 지속의 에너지, 창조의 에너지, 쾌락의 에너지를 자극한다.
2. 어울림의 자극:art는 조화롭다.
어울림은 조형적 어울림, 상호적 어울림, 창조적 어울림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특정 대상을 통해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감각을 즐기려는 욕망을 부추긴다. 또한 어울림을 맛보면 뿌듯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좋은 가치를 생산한다. 또한 예술적 감상과 담론을 생성한다. 이러한 것들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유보한다.
☀ 롤랑바르트의 ‘푼크툼punctum: 어떤 이미지가 유독 나의 마음을 울리는 경우
⇔ 스투디움studium: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고 그렇게 공유하는 경우
3. 응어리의 자극:art는 울컥한다.
르네상스 인간에서 이성의 건조함을 느낄 때쯤 다시 종교적 숭고함으로 감성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크 미술‘에서는 ’형이상학적 황홀경‘을 추구한 점인데 그것은 바로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를 뒤이은‘로코코 미술’은 ‘형이하학적 황홀경’을 추구하였는데 그것은 천상의 신성함이 아니라 속세적 향락인 ‘감성 즐기기’이다. 바로크적 황홀경과 로코코적 황홀경은 ‘외부적 자극’에 의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자생력을 지닌 ‘한’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내부적 재료’와도 같아서 스스로 생산 가능한 ‘순수한 황홀경’이라 할 수 있다. ‘한’은 진정성, 처연함, 감수성, 연대감 등을 일으키는 자기자신 안에 있는 특수 물질인 셈이다. 이 황홀경들은 예술로 승화시켜주는 밑거름이 된다.
4. 덧없음의 자극:art는 지나간다.
미술사는 당대 시대정신의 요구에 따라 그 모습이 변화한다. 세상의 양태는 계속 바뀌며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미’라는 것도 정해진 답이 없다. 단지 ‘에너지의 진행 과정’이 아름다울 뿐이다. 예술은 작가의 주관에 따라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과정이며 시대에 발맞춰 끊임없이 변화를 꾀해야 한다.
5. 불완전의 자극:art는 흔들린다.
때로는 불완전함이 완전함보다 아름답다. 모두가 다 좋아하는 아름다움은 이미 죽은 것이다. ‘미완의 미학’은 보다 고차원적이라 할 수 있다.
6. 사상의 자극:art는 흐름이다.
예술은 새로움을 추구한다. 새로움이란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신의 영역이 아닌 기존 데이터를 가지고 노는 묘한 변주, 기존 예술에서 비껴가는 섬세한(유의미한) 차이, 의미 있는 예술담론을 양산하는 시사적인 사건이다.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창조는 ‘새롭게 인식하기’다. 단지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탄성’ 그 자체가 된다.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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