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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예술을 꿰뚫어 철학을 발견하다
7강. 몸과 예술- 고매한 정신은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있을까?
* 몸은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선상에 있다- 예술의 이해에 있어서 몸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위와 같은 우리의 정신이 양 극단으로 갈라놓는 것을 하나로 되돌려놓기때문이다.우리는 몸으로 존재하기에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선상에 있다.
※ 니체- 우리의 삶이 어느 때, 왜 카오스를 갈망하는지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여김.
- 아폴로적 원리(이성, 정신): 조형의 원리를 뜻하는 말로, 무질서한 자연에 삶을 가능하게 하고 또 증진기킬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
- 디오니소스적 원리(감성, 몸): 삶을 억압하는 경직된 질서를 해체하고 삶을 무질서한 자연적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의지
= 삶을 증진기키고자 하는 의지
* 자연은 질서와 무질서의 피안에 있다- 루소가 이성보다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예찬(계몽주의)이 결국 자연 및 인간의 자연적인 천성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성을 아름답게 함양하는 경우에만 이성이 올바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정신은 오직 육화된 정신으로서만 아름다울 수 있다. 몸은 아름다움의 자극을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일깨울 수 있다. 몸은 무미건조한 이성이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조화와 격동, 기적의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루소로 부터 시작된 생철학은 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까지의 낭만주의에 영향을 끼친다. 프란시스코 고야, 외젠 들라크루아 등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열정과 관능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성의 한계 내에 가두어둘 수 없는 자연의 활력을 드러내려 했다. 몸은 자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몸과 더불어 삶을 영위하는 우리 자신도 질서와 무질서의 피안에 있다.(피안: 이념적으로 한정될 수 없는 존재자, 존재자체)
* 이성이 멈춘 곳에서 정열은 배가 된다- 계몽주의와 진보주의는 인간의 해방에 기여한 측면이 많지만 억압적인 측면 또한 가지고 있어서 낭만주의자들은 점차 계몽주의에 비판적이 되었다. 낭만주의가 주관적인 감성을 강조하기는 하였지만, 개개인의 주관적 감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것 또한 표현하였다. 들라크루아는 전통과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이 남긴 인상을 정열적이고 세심하게 화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샤를 보들레르는 낭만주의자들(특히 들라크루아)을 옹호하였고, 그들은 선과 아름다움에 관한 인위적인 구분과 정의를 용인하려 하지 않았을 뿐 인식의 체계나 도덕의 체계로도 환원될 수 없는 삶과 존재의 본질을 밝히고 또 증진시키는데 애썼다. 순수하고 온전한 삶의 긍정이 일어나는 자리, 즉 보들레르가 말하는 신전 안에서는 모든 인위적인 것은 그저 허무하며 그것을 극복할때만이 진정한 초월로서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8강. 존재와 예술 1-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머리는 본다? 입체감은 거짓말이다!
* 우리는 몸으로 존재하기에 순수한 연속성으로서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다.p.134
* 근원적인 것은 순수하게 평면적인 인상이다
- 인상주의 대표화가 : 클로드 모네, 폴 고갱, 빈센트 반고흐, 폴 세잔, 조르주 피에르 쇠라
- 사물의 입체감이나 풍경의 원근감은 습관화된 경험과 타성의 산물이다. 우리가 보는 입체적인 사물은 평면적인 망막을 통해 얻어진 사물들의 평면적인 인상을 왜곡시켜 얻어진 파생적인 인상에 불과하다. 인상주의 회화의 평면성은 자신마저도 휘감은 존재의 근원적 연속성을 암시하며, 습관화된 경험과 타성으로 인해 망각해버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일깨워 준다.감각의 평면위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내재성의 평면이며 개별성이 없으므로 경계도 없다. 이러한 근원적인 감각 인상으로부터 멀어져 습관화된 경험과 타성의 늪에 빠져버린 일상적 인간들에게는 유의미할 수 있다. P. 138.
* 삶의 존재는 단절을 모른다
- 데카르트: <방법서설>,<성찰>에서 “신체지각을 통해 알려지는 이런저런 속성들은 지각되는 사물에 속한 것인지, 지각하는 몸에 속한 것인지 결정하기 힘든 모호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 인상주의는 빛에 의해 보이는 인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지만, 모호함과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그것이 사물의 근원적 인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각되는 모든 것들은 이미 우리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남긴 인상만을 이해할 뿐이고, 그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헤아릴 수 있을 뿐이며, 모든 것에게서 육화된 정신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흔적을 발견할 뿐이다. 뚜렷이 인지될 수 있는 대상과 공간이 사라진 인상주의의 평면성은 결코 모호하고 불철저한 인식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삶과 존재란 어떤 단절도 인위적인 구분도 모르는 순수하고도 연속적인 힘의 장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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